『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에 부쳐

20세기 중엽의 영국으로 잠깐 가보겠습니다. 1950년 한 해 동안 닭 100만 마리를 먹었던 영국인은 1965년에 1억 5천만 마리의 닭을 먹어 치웁니다. 불과 15년 사이에 닭고기 소비량이 150배가 늘어났던 것입니다. 이 닭들은 부리를 잘린 채 한 뼘이 간신히 넘는 새장 속에 갇혀서 햇빛도 보지 못하면서 사육되다가 세상에 나오면서 도살되어 인간의 식탁 위에 올려진 것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잘 아는 공장식 축산법 덕분이지요.

당시 이런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이 보도되면서 옥스퍼드 대학교의 젊은 철학자 그룹이 축산의 잔인함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 그룹은 동물에게도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동물권’ 개념을 담은 『동물, 인간, 도덕』(1971)이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오랫동안 토론을 하고 집필을 해서 책을 냈지만, 대중서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책은 세상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중요한 얘기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사장될 운명에 처합니다.

옥스퍼드 그룹이 이 책을 쓸 때, 옥스퍼드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피터 싱어라는 호주 철학자가 이들과 함께 토론을 했었습니다. 싱어는 책에 대한 반응이 시원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동물 해방”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서평을 써서 이를 미국의 서평지 『뉴욕리뷰오브북스』에 기고합니다. “『동물, 인간, 도덕』은 동물해방운동을 위한 선언이다”는 구절을 담은 싱어의 서평은 서구 지성계와 독서계를 강타합니다. 사람들은 싱어의 서평을 읽고 『동물, 인간, 도덕』을 구매했고, 인간이 동물에 대해 가하는 잔인함에 대해서 토론합니다. 싱어는 이 서평을 확장해서 『동물 해방』이란 책을 출간합니다.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은 이 일련의 사건들 이후에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혁명이 과거와의 단절을 수반하는 세상의 급격한 변화라면, 싱어의 서평은 혁명을 촉발한 도화선이었던 것입니다.

얘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가 꿈꾸는 세상은 책만큼이나 서평이 세간의 화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만든다고 할 때 격려의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우려와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자주 들었던 반응은 ‘한국에서 서평을 쓸 책이 얼마나 나온다고 서평지를 만드는가’ ‘우리의 독서계(도서 시장)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뉴욕리뷰오브북스』나 『런던리뷰오브북스』를 낼 정도가 되는 외국의 출판계와 비교해 볼 때 우리 사정이 한참 모자란다는 우려였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매년 수만 종의 책이 출판되고 있으며, 교양과 학술 부문만 잡아도 만 권 이상의 책이 나오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정말 좋은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과장되고 부풀려진 화제작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책이 아니라 이런 책들 중에서 무엇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읽을 만하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해 줄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제대로 된 서평이 없었다는 것이지 서평을 쓸 책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게 우리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12월에 진행된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의 크라우드 펀딩은 868분의 후원 참여로 목표액의 971%를 달성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뜨거운 호응이었습니다. 책에 대한 애정과 전문적인 식견이 담겼지만 예리하면서 읽는 맛이 있는 서평들, 그리고 이런 서평을 담은 서평 전문지에 대한 욕구가 잠재해 있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후원자와 독자 여러분들의 힘을 받아 여기 창간호(1호)를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몇 가지 약속을 드리려 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리뷰하거나 서평을 쓰기 위해 출판사에 책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리뷰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직접 고르고 사서 서평을 씁니다. 또 『서울리뷰오브북스』는 편집위원 본인, 동료, 제자의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쓸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 충돌의 상황을 분명하게 밝힐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주례사 서평’을 지양하고, 더불어 세간의 여러 ‘금기’ 때문에 꼭 논해야 할 책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반론과 비판에 대해서 열려 있으려 합니다. 우리나라 지성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서 그 속에서 자족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창간호는 ‘안전의 역습’이라는 주제에 대한 서평과 ‘에세이 리뷰’를 가지고 특집을 꾸며 봤습니다. 안전은 매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일반 리뷰도 풍성합니다. 우주, 러일전쟁과 청일전쟁, 오바마 회고록, 부엌, 한국의 사회사, 언어, 종교와 동성애, 그리고 ‘테스형’에 대한 책들이 리뷰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 외에도 에세이와 짧은 소설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할 것입니다.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앞으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찾아나가려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도 동의하는 하나의 기준은, 좋은 서평을 읽으면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서평을 읽고 장바구니에 책을 가득 담는 독자를 상상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을 텐데, 이렇게 나를 바꾸는 책을 『서울리뷰오브북스』를 통해 만나게 되는 즐거운 미래를 상상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서평이 오늘보다 조금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약간이라도 기여한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창간의 돛을 올린 국내 유일의 전문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항해를 떠납니다. 큰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편집장 홍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