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반론] 현실의 지층은 복합적이다 _ 박경섭

재반론

현실의 지층은 복합적이다

박경섭

서평에 대한 저자의 세 가지 문제 제기와 반론에 답하고자 한다. 저자는 첫째, 외부인과 관리자라는 단어가 부당하며 내가 마치 『전라디언의 굴레』가 경제나 경쟁 논리에 함몰되어 있다고 비판한 듯이, 그리고 그것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서평의 5·18민주화운동(이하 5·18)에 대한 부분에서 내가 왜 외부인이나 관리자와 같은 단어를 썼는지 잘 보여 준다고 쓰고 있다. 서평의 전반적인 내용은 책의 주장과 문제의식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나 어떤 부분에서는 입장을 달리하며,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외부자의 시각이 필요 없다고 한 것은 아니기에 ‘외부인’과 ‘관리자’와 같은 단어가 “‘비판적 시민사회’에서 타인을 공격할 때 흔히 쓰는 언어”주1)라는 저자의 평가는 납득하기 힘들다. 반론에서 저자는 내가 비판적 시민사회의 입장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5·18에 관해서는 마치 기득권 엘리트를 대변하는 것처럼 규정한다. 경제와 경쟁 논리를 비판하면 비판적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고, 광주시의 5·18기념사업 발전계획을 설명하면 “진보 진영 엘리트”(16호, 191쪽)가 되는 것일까?

나는 저자가 반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경제나 경쟁 논리에 함몰되어 있다고 근거 없이 비판하거나 통계 자료의 유효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다만 사회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5·18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며 지역에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강조했다. 내가 책의 내용 중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점은 광주가 5·18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계승할지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5·18 기념사업 마스터플랜」(2021)의 예를 들어, 지역사회에 기념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5·18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존재해 왔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이러한 부분에 대한 인정이나 자료에 대한 검토 없이 “평자는 광주시청이 장기 계획을 세우고 5·18을 기념해 왔다는 것을 핵심적인 반론 근거로 삼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기념하니 광주 정신이 발전적으로 계승된다는 것이다”(16호, 188쪽)라고 서평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5·18 기념사업 마스터플랜」은 광주시의 계획이지만 전남대학교 5·18연구소가 학술 연구 용역을 통해 5·18 관련자들의 자문을 받아서 작성한 것이다. 「5·18 기념사업 마스터플랜」의 내용 중 기념사업에 대한 비판적 평가, 지역의 2030세대의 활동들에 근거해 수립한 발전 전략을 잠시라도 살펴봤다면 내가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기념하니 광주 정신이 발전적으로 계승된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고는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5·18 기념사업 마스터플랜」과 서평에서 추천한 『포스트 5·18』(2021)의 내용을 살펴보시기를 저자께 부탁드린다.

5·18 사적지 중 하나인 옛 광주교도소를 기념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와 광주시의 갈등을 간략하게 서술한 내용에 대해 저자는 반론에서 “외부인이자 관리자가 경제 논리를 앞세워 돈을 안 준다는 얘기다. 해당 사업은 고속도로와 아파트 단지에 끼어 있는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만드는 데 1,150억 원을 요구한 건이다”(16호, 188쪽)라고 적었다. 서평에서는 분명히 기념 공간 조성과 관련하여 광주시의 재정 부담과 ‘민간 개발 방식’에 대한 부분을 언급했지만 기획재정부가 경제 논리를 내세웠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실제 논란 과정을 살펴보면 광주시가 사업비 1,150억 원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마치 내가 옛 광주교도소를 보존하자고 주장한다는 인상을 갖게 만들고, 저자 자신은 경제 논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상무대(육군전투병과교육사령부) 부지가 개발되어 도심이 되고 아파트와 유흥가가 즐비하다고 예를 든다. 저자는 반론에서 5·18과 관련하여 내부자는 보존을, 외부자는 개발을 주장한다는 듯이 양분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5·18 관련 단체,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지역 시민사회 단체가 기획재정부의 옛 광주교도소의 개발을 반대한 이유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축을 포함한 사업 내용과 민간 개발 방식의 문제 때문이었다. 광주시가 발주한 연구 용역인 「민주·인권 기념파크 조성사업: 사전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재수립」(2018)은 5·18과 관련된 일부 시설과 건물을 보존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개발하여 활용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광주교도소 부지를 포함한 유휴 교정 시설과 관련된 2019년 기획재정부의 국유재산 토지개발 선도사업은 이러한 계획을 존중하지 않고 민간 개발을 통해 진행하려 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2020년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를 위탁 사업자로 선정했고, 그해 LH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축물을 포함한 사업 계획을 제출했으며, 당시 사업비는 1,155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2020년 10월 광주시는 옛 광주교도소 부지를 민주·인권의 역사 체험과 교육 및 청년 창업지원 혁신성장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국비 1,155억 원을 투입하는 민주·인권 기념파크 조성 도시개발사업 절차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주2)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해당 사업은 고속도로와 아파트 단지에 끼어 있는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만드는 데 1,150억 원을 요구한 건”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으며, 보존 논리와 경제 논리가 충돌한 것도 아니다.

둘째, 저자는 반론에서 서평이 내부인의 자격을 내세운 인상 비평에 가깝고, 다양한 통계 자료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주장한다. 앞서 5·18의 계승 전략에 대한 언급과 옛 광주교도소 관련 이야기에서 내가 단지 내부인의 자격을 앞세워 비평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나는 통계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라면 서평에서 광주의 교통과 관련된 국가통계포털 자료, 광주 인근 로컬푸드 직매장 매출 자료를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평의 어디에서도 “통계 자료를 사용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몰고 가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에 가까워 보인다”(16호, 189쪽)라는 주장에 해당될 만한 내용은 없다. 서평에서는 현실을 파악하는 데 일종의 수학적 모형과 기호를 활용하는 통계의 특성과 한계가 있기에 다른 측면도 살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저자는 또한 복합 쇼핑몰 이슈에 대해 지역 문화와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것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고 했으나,(16호, 189쪽) 서평의 관련 부분에서는 광주의 역사·문화와 관련이 있는 방직 공장 부지에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지역 문화를 ‘노잼’으로 치부하고 ‘꿀잼도시’의 상징으로 복합 쇼핑몰을 이야기하는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다시 말해 서평에서 나는 책에서 다루지 못한 지역 문화와 경제의 관계, 복합 쇼핑몰에 대한 광주시의 태도나 관련 논의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책의 직접적인 내용과 거리가 있기에 서평에서는 지역 문화와 경제의 관련성을 충분히 다루지는 못했다.

저자는 책의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내가 도시계획위원회(이하 도계위) 회의 내용의 공개를 사례로 들었다고 적는다. 하지만 내가 광주 도계위 회의 공개 조례 제정 사례를 언급한 것은 책의 내용을 반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역량을 강조한 것이다. 반론의 “2021년 말 『전라디언의 굴레』 출간 당시 도계위 회의 공개는 거의 이야기되고 있지 않았다”라는 서술이나 “구체적인 논리로 의제를 제시한 건 『전라디언의 굴레』가 사실상 처음이다”(16호, 189쪽)라는 저자의 생각과 달리, 책이 출간되기 전의 관련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이미 도계위 회의 내용 공개가 지역사회의 의제가 되어 있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주3) 관련 기사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정책 제안의 결과를 반영해 품격 있는 도시로 가기 위한 조례를 제정 및 개정하고, 도시계획위원회 회의 내용을 최대한 공개하는 등 위원회 운영 방법에서 크게 변화된 혁신적인 운영 계획을 광주시는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따라서 도계위에 관한 서평의 내용에 대해 “조사가 충분하지 않거나, 무리한 폄하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읽힌다”(16호, 189-190쪽)라는 반론은 설득력이 없다.

셋째, 책의 내용을 오독하고 “논리와 근거가 꽤 명확한 책을 대상으로 이와 같이 과감한 해석이 이어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16호, 187-188쪽)라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서평의 “호남 문제는 호남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주4)라는 표현과 관련된다. 저자는 사뭇 이해하기 힘든 해석이라고 했으나, 호남 문제가 지역과 중앙의 문제에서 기원했고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호남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책의 논지에 비추어, 결국 해법도 (지역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경제와 권력의 수도권 집중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전라디언의 굴레』가 모든 지역의 문제인 지역 경제의 저발전 구조, 특정 정당의 지배적 정치 체제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다른 해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평은 희생으로 인한 결실을 서울과 중앙 정치권이 취했다면, 호남 문제 해결 또한 호남의 몫만은 아니라고 반어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저자는 반론의 말미를 5·18기념재단에 대한 비판으로 마무리한다. 5·18기념재단에 대한 비판은 서평의 내용과 무관해 보인다. 서평과 관련이 없음에도 이러한 비판을 하는 이유를 헤아려 보자면, 반론의 근거를 서평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인 나를 겨냥함으로써 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5·18기념재단 5·18국제연구원에 속한 나의 위치와 무관하게 저자의 반론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저자는 5·18기념재단을 평범한 시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해하기 힘든 거버넌스라고 지적하면서 “국가 보조금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관련 사업 다수를 수행하는 비영리 재단”(16호, 190쪽)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협의와 심의 기구인 거버넌스와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을 근거로 설립된 재단은 실질적으로, 개념적으로 구별된다. 5·18기념재단에 거버넌스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나, 5·18기념재단은 엄연히 재단법인이다. 국가 보조금을 독식한다고 5·18기념재단을 비판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부마항쟁 관련 예산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독식하고 있고, 제주 4·3 관련 예산을 제주4·3평화재단이 독식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5·18기념재단이 가지고 있는 몇몇 문제점들과 한계가 있을 테지만, 5·18기념재단의 설립 과정과 30여 년의 역사를 보면 저자가 찾아낸 문제점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적 집단이라고 비난받을 곳은 아니다.

저자는 반론의 마지막 문단에서 시민군의 주력이 평범한 시민이었음에도 “5·18과 관련된 언어는 진보 진영 엘리트들이 차지해 왔다”(16호, 191쪽)라고 쓰면서 다시금 5·18기념재단의 구술 생애사가 무명의 시민군이 아니라 교육자, 사회 활동가, 공무원, 농민 운동가 등을 다룬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교육자, 사회 활동가, 공무원, 농민 운동가등이 진보 진영이고 평범한 시민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항쟁의 수많은 참여자들은 평범한 시민과 진보 엘리트 진영으로만 나눌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반론의 마지막 문단은 다큐멘터리 〈김군〉(2019)의 예를 들며 5·18에서 외부자의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역에 부족한 건 비판적 시민단체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로 보인다”(16호, 191쪽)라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이러한 문장은 저자 자신을 외부자로 비유하고 나를 비판적 시민사회의 일원인 것으로 비치게 한다. 비판적 시민단체와 평범한 시민은 이런 방식으로 구별되어도 좋을까? 저자가 문제 삼은 비판적 시민사회의 하나일 내가 속했던 단체는 평범한 시민들인 회원들의 회비로 유지하면서 시정을 비판하고 5·18에 대해 성찰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광주로 유학하기 위해 떠나왔던, 부모님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고향의 문제점들을 들을 때 답답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왜 인구가 줄어들고 발전의 여력이 없는데도 지방자치단체는 생산보다는 축제와 일회성 이벤트에 돈을 쓰고 지속성 없는 엉뚱한 정책을 펴는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미 외부자임을 인정하면 그렇게 애증이 교차하는 생각들이 다스려진다. 고향이 문제투성이로 비칠지라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내가 미처 모르는 잠재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저자 또한 광주를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날들이 더 길어졌기에 이러한 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박경섭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강사, (재)5·18기념재단 5·18국제연구원 연구위원,  (사)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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